깎아주는 줄 알았는데… 1년내내 5~15% 세일
"할인 가격이 사실상 정상가"
40대 중반의 회사원 A씨는 지난해 8월 초 해외로 휴가를 떠나면서 시내 한 면세점에서 화장품을 여러 개 샀다. 마침 그 면세점은 '휴가철 세일기간'이었다. 면세점 화장품 가격은 시중 백화점 판매가보다 30~40% 저렴했다. 백화점에서 16만5000원 하는 '랑콤 제니피끄(50mL) 에센스'의 면세점 정가는 12만1000원이었지만 즉석에서 면세점 VIP 카드를 만드니 10%를 깎아줘 10만9000원까지 가격이 내려갔다. 백화점 가격이 19만원인 '시슬리 아이 크림'은 27% 정도 싼 13만9500원이었다. 면세점 직원은 "화장품의 경우 특정 신용카드로 계산하면 5% 추가 할인 혜택이 있고 특정 회사 제품으로만 일정 금액 이상어치 사면 거기에서 1만~2만원을 더 깎아 준다"고 알려 주기도 했다. A씨는 나중에 친구를 통해 인터넷 면세점에 회원 가입만 해도 기본 5% 할인을 받을 수 있고, 공항 리무진 버스 안이나 환전소에서 5~10% 화장품 할인쿠폰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A씨는 몇 개월 뒤 해외 출장 기회가 있어 다시 면세점에서 화장품을 사려 했다. A씨는 "지금은 세일기간이 아니니 8월보다는 가격이 더 비쌀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빗나갔다. 면세점에서는 몇 달 전 세일 때와 똑같은 방식, 똑같은 폭의 할인 혜택을 주고 있었다. 결국 세일기간이나 비(非)세일기간이나 A씨가 지불한 가격은 거의 같았다. 얼마 전까지 백화점들이 1년 내내 많게는 정상가의 절반 가까운 가격으로 옷을 파는 '연중 세일'을 실시해 옷값의 거품 논란을 불러왔던 것과 다를 게 없었다. A씨는 "뭔가 속은 듯한 느낌이 들어 불쾌했다"고 했다.
이런 면세점의 비정상적인 가격구조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면세점 업계측은 면세 화장품 공급업체들 핑계를 대고 있다. 한 면세점 관계자는 "한국의 면세업체가 사는 물량이 다른 나라 면세점들보다 많아 화장품 공급업체들이 한국 면세점들에는 도매가를 낮춰 준다"고 했다. 화장품 공급업체 입장에선 한국 면세점에서 박리다매(薄利多賣)를 기대한다는 뜻이다. 면세점은 "그런데도 화장품 정가를 낮추지 못하는 건 각 화장품 회사들이 브랜드 가치 등을 고려해 권장 면세가를 지정해주고 그 가격 이하로 정가를 낮추면 불이익을 주겠다고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 면세점들의 화장품 정상가격이 다른 나라와 별 차이가 없는 건 사실이다. 랑콤 제니피끄 에센스의 경우 일본은 1만3650엔(약 12만원), 홍콩은 820홍콩달러(약 11만7900원)로 한국 면세점 정가(12만1000원)와 비슷하다. 한국 면세점들이 화장품업체의 '가이드라인'을 지킨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한국 면세점들이 한뜻으로 공급업체에 정가 인하를 요구하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면세점들이 고객의 환심을 살 수 있는 수단으로 할인 혜택 카드를 계속 써먹기 위해 얼마든지 낮출 수도 있는 정상가 체제를 공급업체 핑계를 대며 그대로 놔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면세점 업계 스스로도 "세계적으로 한국 면세점처럼 다양한 할인 제도를 갖고 있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고 입을 모으는 실정이다. 서울 시내 한 면세점에서 만난 중국 관광객 리우리화(劉梨華·42)씨는 "일본과 중국 면세점에도 가봤지만 한국 면세점처럼 화장품 할인쿠폰을 따로 발행해준 곳은 없다"며 "쿠폰 덕에 매우 싸게 화장품을 살 수 있었다"고 했다.
결국 소비자들 사이에선 "1년 내내 세일을 하고 세일 가격이 사실상 정상 가격이라면 아예 평소 판매가를 싸게 책정하고 세일 기간에는 말 그대로 할인한 가격으로 상품을 파는 게 올바른 상도(商道)"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래야 면세점도 소비자에게 정직한 것이고, 소비자도 세일 혜택을 실질적으로 체감하면서 쇼핑의 즐거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들이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